본문 바로가기

사진

미국 생활 사진 일기_11: 천국에서...Windy City, 시카고로

https://youtu.be/m1xFhFJcBB0

Lexi Jayde 의 Drunk text me 요즘 자주 듣는 노래


 

정든 마이애미

를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마이애미가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엄청 살기 좋은 동네라는 사실을 잘 느끼지 못했다. 그저 히스패닉계 사람들이 조금 더 많고 날씨가 좋고 해변이 예쁜 정도라 생각했는데, 이 생각은 이후 시카고에 와서 완전히 바뀌게 된다. 

귀한 곳에 누추한 손님을 받아준 고마운 CH


마이애미에서 친구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 밤바다를 멍하니 바라보며 생각했다. 참 멀리도 나왔구나 나. 

새로운 친구도 많이 사귀고 이렇게 취업도 못해서 마이애미에 살아보기도 하고. 물가 저렴한 곳을 찾다가 너무 멀리 내려온 건 아닐까 하고 실 없이 웃어버렸다. 

어둑어둑한 콘도 앞 벤치에서 바라본 밤바다는 참 잔잔했다. 

그렇게 밤을 꼬박 새우고 나는 시카고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번에는 유명하거나 거대한 항공사가 아닌 조금 저렴한 항공사를 통해서 갔다. 이륙하고 의자를 기울이려 버튼을 찾는데 버튼이 없어 당황했다. 

저가 항공이라 의자를 기울이는 기능을 제거했던 것이다! 

하긴 이 먼 거리를 10만 원도 안 되는 돈으로 이동하니 이 정도야 참아야지. 하는 생각이었다. 

 

시카고에서의 첫 숙소는 여느 도시들과 다를 바 없는 게스트하우스였다. 게스트하우스는 어딜 가나 (물론 뉴욕을 제외하고) 저렴한 편이다. 워싱턴에서는 일박에 $40 정도 들었고, 시카고에서도 비슷하게 냈다. 게스트하우스는 다행히 비수기여서 사람이 많지 않았다. 지금 복기해보니 도착한 날 바로 하루 이틀 뒤가 출근이어서 보금자리도 못 구한 채로 출근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도난의 위험이 있었기에 모든 고가 장비들을 들고 다녀야 했다. 밥을 차려먹기에는 너무 피곤해서 도착하자마자 방으로 들어가 누웠다. 

 

방은 12명 정도가 들어가 잘 수 있는 방. 이층 침대들로 가득 채워져 있는 고풍스러운, 오래된 느낌의 방이었다. 건물 외관도 굉장히 오래돼 보이는 게, 적어도 50년은 넘은 것처럼 보였다. 방 안에는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로 채워져 있었다. 한 두명을 제외하곤 여행객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모두 낮에 무슨 일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외투도 벗지 않은 채 하얀 시트 위에 몸을 맡기고 곤히 자는 모습이 꼭 숙식 제공 일용직 현장 숙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라 모르겠다. 나도 자야지. 양치랑 세수만 하고 몸을 뉘었다. 

 


첫 출근이었다. 회사의 모든 직원들이 함께 점심을 먹는다고 자택근무를 하던 와중 회사로 직접 몸을 행차해 줬다. 고마웠다. 모두들 내가 뭘 먹고 싶은지 물어봤다. 사실 음식에 대한 탐구 욕심이 없는 나는, 가장 먼저 떠오른 시카고의 유명한 음식: 핫도그가 먹고 싶다고 말했다. 

 

직원들은 의아한 표정으로 회사가 있는 동네에서 가장 맛있는 핫도그집에 가자며 전 직원이 차량 두 대에 나눠 타 핫도그 집으로 갔다. 

모두들 이런저런 질문을 했다. 어떻게 여기 오게 됐느냐, 언제 돌아가느냐, 무엇을 전공했냐, 등등. 한국식 호구조사는 아니었다. 정말 일과 관련 있는 배경만 물어봤다. 하나도 불편한 기분이 들지 않았다. 

 

한국에서 어떤 일을 하든 고용주는 부모 관계라던가, 부모님 직장이라던가, 사는 곳을 꼬치꼬치 캐묻는 게 일상인데. 개인의 사생활을 존중해주는 이곳이 참 마음에 들었다. 

당시 시카고는 할로윈 시즌이어서 곳곳의 가정집마다 이런 장식들을 볼 수 있었다.


첫 출근은 무난 무난했다. 그들은 나에게 간단한 사무실 투어와 열쇠를 줬고, 편한 시간에 출근하라는 말을 해줬다. 그날이 금요일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직까지 집을 구하지 못했던 나는 주말을 이용해 최대한 빨리 세 달 동안 머물 집을 구해야 했다. 

내가 들어간 웹사이트들은 Craigslist, zillow, apartments.com 이었다. 결국 Craigslist에서 괜찮아 보이는 매물의 주인들에게 이메일을 다섯 통 정도 보내고 기다리는 와중, 아마 토요일 저녁쯤, 700불 정도 월세를 내야 하는 매물을 올린 사람에게서 회신이 왔다. 방 투어를 해보라는 것이었다. 그는 어떠한 서류나 신분 증명도 요구하지 않았다. 

 

일요일 저녁에 투어를 하기로 하고 나는 시간에 맞춰 게스트하우스에서 출발했다. 

 

아뿔싸. 아직까지 나는 외투를 사지 않았다. 이날의 기온은 영상 3도. 바람은 시속 15마일로 불고 있었다. 체감 기온은 영하권. 히트택 한 벌과 후드 한 벌만 입은 나는 칼바람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아 춥다... 정말 춥다...' 

날씨가 춥다는 사실을 넘어 이런 날씨에 후드 하나 밖에 입을 수 없는 내 상황이 조금 우울했다. 옷 한 벌 살 시간도 없이 출근하고 살아야 할 집을 알아봐야 한다니. 

 

게스트하우스에서 두 번의 버스를 환승해 40분 정도 가니 조용한 주택가에 집이 나왔다. 집은 꽤나 오래돼 보였다. 그래도 이전에 묵었던 집에 비하면 엄청난 장족의 발전. 드디어 지하를 벗어나는 것이었다. 

 

집 앞에 오들오들 떨며 문자를 보냈다. 지금 도착했다고. 그는 문을 열고 나를 반겨줬다. 키가 꽤 큰 백인이었다. 멋스러운 수염을 달고 있었고, 조금은 목소리에 힘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직감으로 그가 좋은 사람임을 느낄 수 있었다. 

 

들어간 집은 어두웠다. 거실에 어떤 불도 켜놓지 않았고, 여기저기 칼집이 난 오래된 테이블 위에 램프 하나만 켜져 있었을 뿐이었다. 일부로 불을 꺼놓은 것일까. 생각했다. 

 

집과 방은 꽤 마음에 들었다. 내 방은 위층에 있었고, 함께 쓰는 거실에는 대형 티브이와 채광이 잘 들어오는 창이 있었다. 무엇보다 3m는 넘어가는 서재와 그 옆에 있는 나선형 계단이 너무 낭만적이었다. 아, 완전히 작동 가능한 고풍스러운 벽난로를 언급했던가? 

 

워싱턴 디시에서 세 명이서 나눠 월세 $700 냈던 거에 비하면 엄청 파격적인 가격이었다. 그와 최종적으로 금액에 관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주방에서 종이와 펜 한 자루를 가지고 오더니 그는 전기비, 가스비 등을 적어 내려 가기 시작했다. 최종적인 월세는 $1050. Criagslist에 적혀있던 금액보다 25% 이상 차이 나는 금액이었다. 

 

앗, 너무 비싸다. 

 

나는 다른 매물도 봐야 하니 다음에 연락 주겠다고 하고 우선 집을 나왔다. 게스트하우스로 돌아가는 버스 안 창에 머리를 기대며 생각했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인플레이션과 킹달러 상황에 미국에 와서 이렇게 발버둥 치며 사는 게. 조금은 지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고. 

 

게스트 하우스로 돌아와 다시 눕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흐트러진 시트에 몸을 가누고 매물주에게 문자를 보냈다.

'생각했던 것보다 비싸서 갈 수 없다.'

-'예산이 얼마냐'

'룸메이트와 함께 사는 거라면 $750, 혼자 원룸에서 사는 거라면 $1,000을 생각하고 있다.'

-'$800에 맞춰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기다려 달라.'

 

그리고 두 시간 뒤 그는 내일 게스트하우스에 직접 와서 자신이 짐을 옮겨주겠다고 했다. 

드디어 게스트하우스와 작별인사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성공적으로 미국에 내 보금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다.

 

 

 

집 근처 버스 정류장 앞 가게에 붙여있던 미국 스타일 포스터들


그렇게 자리도 잡고 출근도 하고.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같은 프로그램으로 미국에 온 MS와 함께 시카고 시내를 처음 둘러보며 사진도 찍고. 혼자 바에 가서 취할 때까지 마셔보고, 영화도 보고 (블랙 아담을 봤는데, 이제 두 번 다시 DC 영화는 보지 않을 생각이다. 형편없었다.) 

 

가장 중요한 헬스장도 등록하고. 일상이 자리 잡았다. 

 


시카고 도심 풍경: Loop

베트맨: 다크나이트에 나왔던 촬영 장소다.
MS


사무실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