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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 I learned

특전사 영어 통역병 합격기

모든 대한민국 남자는 병역의 의무가 있다. 나도 내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군대에 두 번 지원했다. 한 번은 카투사가 되기 위해, 두 번째로 어학병이 되기 위해서. 카투사 지원은 1차 관문인 추첨에서 떨어졌다. 대한민국 군대는 카투사 추첨에 한번 떨어지면 다시 지원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간절히 바랬지만, 어쩔 수 없어 다른 곳을 알아봤다. 
 

Nikon F4, 105mm, 400tx

 
첫 번째로 알아본 곳은 공군이다. 내 주위에 공군에 현역 복무 중인 친구가 둘이나 있다. 하나는 K2 군 공항, 하나는 111대대. 모두 편안한 군생활이라며 나에게 공군을 추천했다. 편안한 군생활은 나도 좋다. 하지만 친구들이 군대에 들어간 지 1년이 지났지만, 이제 겨우 반을 넘긴 군생활을 한 것을 보고 마음을 접었다. 몸이 아무리 편한 들 분명 정신적으로 피곤한 생활을 장기로 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피할 수 없는 병역의 시간을 알차게 보내고 싶었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20대의 하루하루들을 최선으로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저 평범하고 편안한 공군은 나에게 딱히 끌리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모집병으로 눈을 돌렸다. 사진이 취미인 만큼 미디어 병사를 알아봤으나, 관련 학과 학생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기에 포기했다. 그렇다면 나에게 남은 것은 운전과 어학이었다. 
 
육군 운전병으로 복무중인 친구와, 육군 군의관으로 일하셨던 내 주치의 선생님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다. 몸은 편하지만 정신적으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생명을 담보로 하는 "운전"이기에 군기도 세고 수면 관리가 철저히 되는 사람이 훌륭한 운전병 생활을 한다고 했다. 내가 가장 못하는 것은 수면관리다. 잠을 내 마음대로 조절하지 못한다. 일어나는 것은 힘겹게 해내지만, 잠드는 것은 불면증에 가까울 정도로 쉽게 잠들지 못한다. 
 

Nikon F4, 105mm, 400tx

잠을 설친채로 운전대를 잡고 전우들을 수송한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큰 피해를 줄 것 같았다. 얼마 전 퇴사한 회사의 대리 두 분이 모두 운전병 출신이었는데, 새삼 운전병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 그분들을 다시 떠올리니 대단한 사람들 같았다. 아니, 만기 전역한 모든 남자들이 대단하다. 
 
그렇다면 나한테 남은 선택지는 하나. "어학병"이었다. 과거에는 통역병이라는 이름이 있었으나 지금은 어학병으로 부른다.. 나는 해외에서 어학연수를 받은적이 없고, 전공도 영어가 아니고, 딱히 학원을 다녀본 적도 없다. 그냥 혼자 해외의 문화가 좋아서 공부한 것이 전부고, 문법적으로는 전문적이지 않다. 자신감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도전도 안 하고 일반병으로 복무하기에는 인생의 1년 6개월이 너무 아쉬울 것 같아서 일단 도전은 해보기로 했다. 
 
내 수준에 어울리는 어학병은 두개였다. 하나는 해군 어학병, 그리고 육군 어학병. 해군 어학병이 육군보다 지원 점수가 조금 낮았기에 합격률이 조금 높을 것 같아 해군 어학병에 대해 자세히 알아봤다. 하지만 딱히 메리트를 느끼지 못했다. 해군 어학병은 일반병과 거의 똑같은 생활을 하고, 가끔 다른 나라 군함들과 훈련을 함께 할 때만 특기를 살려 영어를 사용하지, 다른 부분에서는 일반병과 차이가 없었다.
 

Nikon F4, 105mm, 400tx

 
그리고 육군 어학병이 있었다. 육군어학병은 해군 어학병보다 1차 커트라인은 조금 높았다.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현역으로 육군 어학병 복무 중인 친구에게 물어보니, 매일 영어를 사용할 수 있어 공부가 되는 군 복무가 만족스럽다고 했다. 하지만 되려 이런 행정적인 업무가 힘들기도 하고 했다. 나는 어떻게 하면 합격할 수 있는지 물어보니, "김승국 어학원" 이라는 학원을 추천받았다. 
 
최종적인 선택은 육군 어학병이었다. 해군은 군 복무도 육군보다 길고 자기 발전의 기회도 육군보다 적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일하다 점심시간에 지원 넣고, 2시간 뒤쯤에 1차 추첨 합격 통보를 받았다. 그리고 최종적인 2차 시험 합격을 위해서 퇴근 후 방법들을 찾아봤다. 친구에게 추천받은 "김승국 어학원"은 강남에 위치해있었고, 온라인 강의도 있었지만, 나에게는 가격이 부담이었다. 다른 학원들을 찾아봤지만, 어학병 준비를 전문으로 하는 학원은 서울에도 몇 곳 없었고, 대구에는 하나도 없었다. 결국 나는 한 달 정도 남은 시간 동안 혼자 시험을 준비하기로 결정했다. 
 
우선 블루투스 이어폰을 구매했다. (Sony WF-1000XM3)
 
사실 평소에 많이 갖고 싶었다. 
 
노이즈 캔슬링 기능이 있었고, 한 번에 최대 6시간 재생 가능하며 케이스와 같이 중간중간 충전하면 24시간 사용 가능했기에 근무 중 듣기 공부하기 딱이었다. 시험에는 대충 어떤 문제가 나오나 알아보려 인터넷을 많이 찾아봤지만 정보가 정말 적었고, 대부분은 김승국 어학원 관련 웹사이트에서 찾을 수 있었다. 심각했다. 그래도 여기저기 긁은 정보들을 토대로 북한과 관련된 외교 뉴스와 국방외교 관련 뉴스들을 위주로 듣기를 시작했다.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팟캐스트는 NK news였다. iPhone Podcast앱에서 검색하면 바로 찾을 수 있다. 근무할 때는 이렇게 영어 뉴스를 들으며 듣기를 길렀고, 통역실력을 기르기 위해 퇴근 후 집에서는 아리랑 뉴스를 유튜브로 보며 통역을 했다. 
 
 

Nikon F4, 105mm, 400tx

 
알아보니 시험은 필기도구 없이 진행되며, 6 문장 정도 되는 지문의 길이를 암기해서 바로 통역해야 했다. 여기서 6 문장은 일반적인 뉴스 앵커의 말하기 속도로 30초 정도다. 30초, 짧다 생각했지만 정말 어려웠다. 전반적인 흐름과 세부사항들을 모두 기억해야 했기 때문이다. 통역법을 공부하기 위해서 도서관에 갔다. 대학 도서관이었지만 통역에 관한 책은 없었고, 번역과 언어학에 관련된 책들만 있었다. 정말 답답했다. 국방부에서는 어학병 2차 시험을 준비하기 위한 어떠한 정보도 제공하지 않았고 사회에서 유일하게 정보를 제공하는 곳은 김승국 어학원이 유일했다. 
 
답답함을 안고 그렇게 한 달이 흘렀다. 한 달간 틈만 나면 영어 팟캐스트를 들으며 듣기 실력을 길렀고, 퇴근하고 시간 내어 통역 공부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방향감각 없이 눈감고 더듬거리며 공부한 느낌이 강하게 들어 시험 당일날까지 자신감이 없었다. 솔직히 시험을 포기할까 생각도 들었지만 어머니의 권유로 시험장에 갔다. 경기도 이천에 위치한 국방 어학원. 자가용 없이 가기에는 꽤나 불편한 곳이다. 국방 어학원 바로 앞에는 이마트 24 편의점과 국숫집이 있었다. 그리고 산 넘어 보이는 허름한 모텔 하나.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국숫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부모님과 같이 온, 내 또래쯤 돼 보이는 남자들이 많이 보였다. 머리 길이로 봐서 어학병 시험을 치러온 수험생이겠니 생각하며 밥 먹고 나름 준비해 간 국방 관련 단어들을 훑어보고 국방 어학원으로 들어갔다. 
 
 

Nikon F4, 50mm, 400tx

 
시험시간보다 1시간 30분 일찍 들어가서 사람들은 많이 없었다. 그렇게 입구를 걸어가던 도중, 머리가 긴 남자를 보고 수험생이겠니 하고 먼저 다가가 말을 걸었다. 그분도 이번 어학병 2차 시험을 치기 위해 온 사람이었다. 그렇게 둘이 걷던 도중, 뒤에 다른 분이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이번 시험 치시는 분들인가요?" 
 
그렇게 우리는 OT를 진행하는 건물로 갔다. 입구에 장병들이 수험표와 신분증 확인을 하고 있었는데, 나는 바보같이 수험표를 출력해오는 걸 깜빡했다. 아뿔싸. 이러다 시험을 못 치는 건 아닐까 걱정됐지만, 시험 관리 장병은 수험표는 필요 없고 신분확인용 신분증만 있으면 응시 가능하다는 말을 들었다. 다행 었다. 그렇게 신분확인 후, 수험번호를 부여받고 우리 3명은 OT를 듣기 위해 강당으로 들어가 함께 앉았다. 시험 시간보다 아주 이른 시간이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착석해있었다. 나랑 같이 강당에 들어온 한 분의 단어장을 보니 "김승국 어학원"이라는 표시가 크게 적혀있었다. 역시, 대한민국 유일 어학병 준비학원이구나라고 생각했다. 앞줄 사람들이 보는 단어장도, 뒷줄 사람들이 보는 단어장도 모두 김승국의 것이었다. 
 
OT가 시작되기 전까지 나는 NK news 팟캐스트를 들으며 듣기 연습을 하고 내가 작성한 국방 단어표를 봤다. 그렇게 OT가 시작되고, 군무원 교수님이 들어와서 이런저런 유의사항을 설명해줬다. 여느 시험과 다를빠 없는 유의사항들이었지만, 특이하게도 교수님은 "김승국 어학원"을 언급하시며, 해당 학원에서 직원을 시험에 응시시켜 출제 문항을 유출한다는 말을 들었다며, 그런 사람은 없기를 바란다고 말씀하셨다. 관계자들도 김승국 어학원을 크게 의식한다는 사실에, 어떤 학원도 다니지 않은 나는 오히려 걱정됐다. 
 
 

Nikon F4, 105mm, 400tx

 
OT가 끝나고 대기를 위해 이열종대로 대기실로 이동했다. 간이 대기실은 흡사 중고등학교의 정보실과 같았는데, 우리는 자리에 착석해서 간부들이 무작위로 뽑아가는 순서대로 시험에 응시해야 했다. 나는 운 좋게도 두 번째 그룹으로 뽑혔다. 대기실을 나와서 1층으로 내려가 강의실로 보이는 방 앞에서 줄을 섰다. 시험 순서와 마찬가지로 통역 순서도 무작위로 간부가 결정하는데, 나는 한글을 영어로 통역하는 시험을 먼저 치게 됐다. 줄을 서서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려 했지만, 쉽지가 않았다. 나는 시험 응시 직전까지도 어떤 형식으로 출제가 되고, 어떤 분위기에서 치러지는지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결국 이미지트레이닝을 포기하고 긴장을 풀려 최대한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나는 다음 순서가 됐고, 내 코앞의 방문이 열리고 응시를 마친 수험생이 울상으로 나왔다. 
 
나는 응시실로 들어가자마자 주의사항에서 들은 바대로 내 수험번호만 크게 말하고 바로 앞에, 누가 봐도 수험생 앉으세요라고 배치된 책걸상에 앉았다. 맞은편에는 해병대 정복을 입은 장병이 앉아있었고, 뒤편에는 군무원으로 보이는 여성분이 앉아있었다. 바로 맞은편에 있던 해병대원의 책상에 내 수험표를 제출했다. 해병대원도 그렇고, 뒤에 있던 군무원도 아무 말이 없었다. 당황스러웠다. 내가 수험번호를 말하고, 수험표를 제출하고, 자리에 앉고 어색한 3초 정도가 지났을 때, 뒤에 앉은 군무원이 "시작하겠습니다."하고 말하고 곧바로 녹음된 한국어 파일이 흘러나왔다. 말하는 속도는 뉴스 앵커들 보다 1.3배 정도 되는 것 같았다. 여자 목소리였는데, 불행히도 한글로 된 문장들이 도저히 귀에 들어오지가 않았다. 녹음파일이 흘러나오는 도중 나는 해병대원의 명찰이 보였고, 오바로크가 아닌 명찰을 달고 다니는 것이 신기했고, 명찰이 유광으로 천장의 빛을 반사하는 것이 특이하게 보였고, 그러다 녹음파일의 재생이 끝났다. 
 
 

Nikon F4, 50mm, 400tx

 
'망했다...' 녹음파일이 끝나고 머리에 남은 게 별로 없다는 걸 깨닫고 든 생각이다. 그리고 나는 5초 이내에 통역을 시작하지 않으면 0점 처리된다는 말이 기억나, "시작할까요?"라고 물었고, 해병대원은 시작하라고 말했다. 녹음의 내용은 한국과 북한, 그리고 일본의 정세와 미국의 군사 행동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큰 틀에서의 내용도 기억나지 않고, 그저 단편적으로 들린 문장들만이 머리에 남아서 나는 큰 내용을 설명하지 못하고, 토막 된 내용의 문장들만 영어로 말했다. "미국의 B-52 폭격기가 북한 상공을 돌며 위협했다" 등등등. 전혀 연결되지 않고, 그냥 사실 나열에 불과한, 어색하기 짝이 없는 영문장을 3개 정도 말하고 나는 할 말이 없었다. 통역을 하고 싶어도 머리에 녹음파일이 남아있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해병대원은 채점지(수험표는 채점지로 활용된다)를 보다 고개를 들어 말없는 날 바라봤고, "끝나셨어요?"라고 물어봤다. '아뇨. 끝나지 않았어요. 끝나면 안 되는데, 머리에 녹음 내용이 하나도 남지 않아 할 말이 없네요. '
 
나는 할 말이 없었다. 
 
망쳤구나, 하고 나는 수험표를 받고 문을 나가 영-한 통역을 치기 위한 줄에 섰다. 긴장이 없어졌다. 그냥 망했구나 하고 생각하니 부담도 없어지고 최선을 다하자라는 생각이 머리를 채웠다. 줄을 기다리는 시간도, 내가 그런 생각이 든 순간부터 빨라졌다. 나는 어느새 응시실로 들어와 있었고, 영문 녹음파일이 흘러나왔다. 이번에는 집중이 흐트러지지 않고 모든 단어, 모든 문장이 정확하게 들렸다. 녹음본이 끝나고 머리에서 정보가 날아가기 전에 빨리 통역하기 위해, 녹음이 종료된 순간부터 나는 말하기 시작했다. 첫 문장을 해석하고 한글로 변환해서 말하는 동시에 그다음 문장의 의미들을 떠올리고 한글로 바뀔 준비를 시키고, 첫문장의 통역이 끝나면 머리에서 준비된 두번째 문장의 통역을 하며 그 다음 문장을 준비했다. 그렇게 나는 영-한 통역 시험마저 끝냈다. 
 
홀가분했다. 비록 시험을 망쳤고, 떨어지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웠지만, 그냥 짐 하나를 덜어놨다는 생각에 홀가분했다. 국방어학원 입구에서 만난 세 사람 중 한 명을 밖으로 나가는 길에 만나, 시험의 난이도에 대해 이야기하고 서로 번호를 교환했다. 그렇게 나는 다시 대구로 돌아왔다. 
 

Nikon F4, 105mm, 400tx

 
기름값 7만 원. 떨어질 시험에 쓴 돈이라 조금 아깝게 느껴졌다. 심지어 목요일 시험이라 소중한 월차까지 썼다.
 
시간이 흘러 나는 여느 계약직의 끝처럼 퇴사했고, 일자리를 알아보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다 최종 합격자 발표날, 기대도 없이 불합격의 확인을 위해 병무청에 접속한 나는 황당하게도 합격이었다. 정말 작은 기대도 하지 않아서 많이 놀랐다. 그렇게 나는 기쁜 마음으로 일자리 알아보기를 그만두고, 입대를 위한 편안한 마음가짐과 몸가짐으로 국방의 의무를 기다리고 있다. 
 
입대 전 내가 알아본 바로는, 어학병의 자대배치는 여느 사병들과 마찬가지로 뺑뺑이다. 운이 좋으면 한미연합사 같이 매일매일 영어실력을 기를 수 있는 곳에 배치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운이 안좋으면 어학병이 필요가 없는 곳에 배치되어 평범한 병사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운이 좋든 좋지않든, 단 한가지 장점이라면 한미연합 훈련이 있을 때는 거의 모든 어학병이 그 훈련에 참가해 영어를 쓸 수 있다는 것이다. 한달도 안남은 시간이 지나면 나는 입대한다. 부디 내 자신을 발전할 수 있는 곳에서 국방의 의무를 다할 수 있기를 바란다. 
 
글을 마무리하며,
이번에 쓴 글이 저처럼 아무런 학원, 경험도 없이 어학병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시험 치며 가장 힘들었던 것이 녹음파일의 완전한 암기였습니다. 통역실력은 짧은 시간만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니, 차라리 암기 요령을 익히고, 듣기 훈련을 많이 하는 것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저를 포함해 곧 입대하는 모든 장병들과 복무 중인 장병들이 다치지 않고 제대하고, 의무의 시간 동안 자신을 가꿀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글에 사용된 사진들은 내용과 무관하지만, 부족한 글을 마냥 읽기엔 지루 할 것 같아 넣어본 제가 직접 찍은 사진들입니다.
사진이 마음에 드셨다면 제 인스타그램도 확인해보세요. 
Instagram nametag : vincent.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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