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진

한국에서 거리 사진 찍기

마약 투여, 불법 총기 소지 정도로 중한 죄는 아니지만 이 둘만큼 죄의시되는 행위는 아마도 거리사진, Street Photography일 것이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진가들이 거리사진을 시도했다가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견디지 못하고 마음에도 없는 풍경을 찍거나 걸어가는 노부부의 뒷모습이나 찍었으리라. 

 

Nikon F4, AF-S 17-35mm f/2.8D, Fujifilm C200
Nikon F4, AF 35mm f/2, Fujifilm C200

 

오늘 나는 거리사진의 도덕성을 논의하고, 거리사진은 결국 옳기에 몰래 찍어도 상관이 없다는 말을 하려는게 아니다. 나는 촬영자도 편하고, 피사체도 거부감 없는 거리사진을 이야기하고 싶다. 

 

오른손에 쥔 두꺼운 DSLR. 비가 오는 뒷골목을 걸어가는 당신. 당신은 그라피티가 가득한 허름한 담을 배경으로 우산도 없이 비 맞으며 키스하는 연인을 본다. 비구름 사이로 떨어지는 햇살은 맞붙은 연인의 입술 위 좁은 공간에 아름답게 떨어진다. 역광은 강하지 않고 당신의 카메라는 완벽한 노출 세팅이 되어있다. 해야할 것은 카메라를 들고 찍는 것. 구도는 이미 장면을 본 직후에 머릿속에 구성됐다. 그냥 카메라를 들고 찍기만 하면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비맞으며 걸어다녔던 하루가 보상될 것 같다. 하지만 당신은 사진을 찍지 않는다. 사진을 찍은 사실을 들켰을 때 후폭풍을 감당 할 수 없을 것 같다. 키스 하던 남성이 화를 크게 낼 것 같다. 어쩌면 이상한 취급을 받아 경찰에 잡혀갈지도.

 

Nikon F4, AF-S 17-35mm f/2.8D, Cinestill 800T

 

아니 어쩌면 찍었다. 머릿속으로 사진을 담았고 그 사진은 며칠간 당신을 괴롭힐 것이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다. 나는 그랬다. 한국은 유독 거리사진에 박하다 느꼈다. 일명 도촬. 허락받지 않은 촬영. 순수하지 않은 의도. 국내 최대 사진 커뮤니티를 봐도 해외에서는 열정적인 카르티에 브레송들이 국내에서는 카메라를 든 젠틀맨이 되어있다. 그들이 찍고 싶지 않아서 셔터를 누르지 않은게 아니다. 뷰파인더 속 사람들이 찍히고 싶지 않아한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찍은 사진들을 당당히 공개할 수 없기에 국내의 거리사진은 사진가들에 의해, 피사체들에 의해 가라앉고 있다. 

 

Left : Nikon F4, AF 35mm f/2, Fujifilm C200 / Right : Nikon F4, AF 35mm f/2, Cinestill 800T

그럼 어떻게 한국에서 거리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방법은 단 한가지 밖에 없다. 사람 대 사람으로 허락을 구하는 것. 어려울 것이다. 거절도 많이 당하고 좌절도 많이 할 것이다. 또 몇몇의 진정한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한정판 라이카로 턱수염을 쓸어내리며 피사체가 카메라를 의식한 순간부터 그 사진은 거리사진이 아니라 연출사진이라고 화 낼 수도 있다. 

 

Nikon F4, AF 35mm f/2, Cinestill 800T

 

과연 그럴까?

 

20세기를 대표하고, 어쩌면 사진 역사상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아프간 소녀'를 촬영한, National Geographic과 Magnum의 전설적인 사진가 Steve McCurry는 인물사진의 대가로 알려져있다. 그는 오랜 시간동안 National Geographic에서 주제를 받아 지구 구석구석을 돌며 해당 주제에 해당하는 포토 저널리스틱한 사진을 찍었다. 저널리즘 사진이란 그 어떤 사진의 종류보다 가장 꾸밈없이 찍혀야 한다. 하지만 투명인간이 되어 사진을 찍을 수 있는게 아니라면 처음보는 사람을 촬영자의 영향 없이 찍기란 애초에 불가능하다. 당신이 크고 검은 카메라를 들고다니는 순간부터 사람들은 당신이 누구인지 알아본다. 그리고 그들은 포토제닉한 피사체를 찾는 당신의 눈동자가 자신을 바라보지는 않을지 자연적으로 경계하고 있다. 그곳에 나타나는 순간부터 꾸밈은 시작된 것이다.

 

Steve는 인물 촬영을 할 때 아무런 소통 없이 낯선 이들을 카메라로 급습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자신은 어떠한 사진을 찍고싶으며, 협조를 해줄 수 있겠냐는 소통을 한다. 그리고 그는 미리 생각해둔 이미지와 가장 닮은 이미지를 담기 위해 촬영을 시작한다. 이러한 그의 작업 방식의 결과는 그의 명성이 대답한다. 

 

물론 어떤 순간에는 소통없는 일방적인 촬영이 필요 할 때도 있다. 하지만 길에서 마주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국어를 하는 친절한 상황에서 굳이 무례를 범할 필요는 없다. 다시 한번 그 비오는 골목에서 그 커플을 마주한다면 물어보자. 거절을 예상하고. 그리고 찍어도 좋다고 말해준다면 머릿속의 이미지를 실현하자. 생각보다 우리는 열려있고, 포토제닉한 사진은 가까이 있다. 

 

Nikon F4, AF 35mm f/2, Fujifilm C200

'사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티브 맥커리의 조언  (0) 2021.04.10
훌륭한 사진을 찍는 12가지 방법 - Nasim Mansurov  (0) 2021.04.04
사진 구도 입문 (2) - Spencer Cox  (0) 2021.04.03
사진 구도 입문 - Spencer Cox  (0) 2021.03.21
필름이 대세라고?  (0) 2020.0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