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이 대세라는 말이 많다. 아니다. 나는 필름만 찍는 사진모임이거나 디지털도 같이 찍는 모임이거나, 여러 사진 모임에서 활동했었다. 지금은 한 곳에서만 활동 중이다. 그런 활동들을 하며 취미로 사진을 찍는 많은 사람들을 봤다. 그래서 말할 수 있는데, 절대 필름은 대세가 아니다. 수치상으로 필름을 찍는 사람들이 디지털 카메라를 쓰는 사람보다 적으니 대세가 아니라는 말이 아니다. 필름이 대세라고 하기에는 필름 유저를 위한 인프라가 부족하다. 또 필름이 대세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자신들이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감성 을 동경할 뿐, 필름을 부흥시키고 있지는 않다. 커뮤니티도 크지 않다. 필름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필름을 이해하지 못하고, 필름 사진에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도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너무 적다.
필름 사진이 대세가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확실히 대세라고 말할 수 있는 디지털 사진이 갖고 있는 환경들 중 몇 가지만 갖고 있으면, 필름은 대세라고 부를 수 있다.
1. 필름 사진을 위한 인프라가 갖춰져야한다.
필름 사진은 손이 많이 간다. 우리는 사진을 찍고, 필름 캐니스터를 카메라에서 제거한 후 현상소에 가져간다. 현상소에서는 사진을 현상해주고 현상된 필름을 스캔해서 디지털화한다. 우리는 필름이 여러 단계를 거쳐 최종적으로 디지털화돼야 사진들을 쓸 수 있다. 디지털 사진기였다면 현상소를 거치지 않고 바로 가공되어 사용됐겠지만, 필름은 디지털 사진과 비교해 번거로운 단계가 많다. 그런데 번거로움 보다 더 큰 단점은 현상소라는 곳을 필수로 거쳐야 우리가 소비할 수 있는 사진이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필름 사진에서 가장 중요한 인프라, 현상소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대부분의 필름 사진가들이 C-41 과정을 거치는 컬러 필름을 사용하기에 많은 현상소가 지역별로 구석구석 갖춰지는 것이 대세가 되기 위한 첫번째 조건이다. 지금의 상황은 대세라 부르기엔 너무 열악하다. 인스타그램 공유를 통해 너도 나도 필름을 찍는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은 현상소의 접근성이 좋은 사람들만이 필름을 찍고 있다.
2. 전문가들이 너무 적다. (더 많은 고수 들이 필요하다)
모든 학문에는 정점을 찍은 마스터들이 있다. 각 학과별로 자신들의 전공에 정상을 찍은 교수님들이 있고, 학문을 제외한 각 분야에도 자신들이 하는 일에 전문적인 장인들이 있다. 학문이던 아니던 그 분야에 처음 발을 디딘 사람들은 교수나, 장인이나, 고수들에게 배움을 받고 곧이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에서 그 분야에 관심을 가지는 아마추어가 되고, 오랜 시간이 지나 프로 가 된다.
이러한 과정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적절한 비율의 마스터들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필름 사진에는 그러한 전문가는 너무 적고, 아마추어가 되고 싶은 사람들은 너무 많다. 나는 실제로 필름에 정통한 사람을 대면한 적은 없다. 내 주위에도 없다. 사진인들을 많이 만나왔어도 그런 사람은 만나기 힘들었다. 하지만 온라인에서 가끔 지식을 전수해주는 고수들을 찾아 대화할 수 있었고, 두 분에게서 많은 지식을 받아 코닥에서 배포하는 공식 매뉴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꿀팁들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몇 주전 Kodak 공식 D-76메뉴얼과 400TX필름_메뉴얼을 번역해 공유했다. 암호는 "바람을가르는비둘기" 구구구구 비둘기야 밥먹자~ ) 이렇듯 지식을 전수해줄 전문가들의 수가 많아 정보의 접근성이 좋아져야 필름은 비로소 대세가 될 수 있다. 필름 사진가들의 지식이 상향 평준화되어 더 이상 후지 C200 필름이 노출 부족으로 초록 포그(fog)가 낀 걸 보고 " 역시... 필름이라 감성 터지네요~" "저도 따라해보고 싶어요~" 무슨 현상인지는 알고 감성 찾자
인간의 이면성을 표현하기 위해 나는 바지를 대충 벗어 뒤집었고, 우리들의 숨겨진 면은 아무도 찾지 않고 모두가 외면한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아무렇게나 바닥에 던졌고, 이러한 현상은 우리의 깊은 심연에서 일어나기에 노출 부족으로 의도를 표현하려 했다. 개소리죠?
거창한 말을 하고싶은 건 아니다. 그냥 필름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최근에야 흑백 필름을 배우기 위해 아등바등 노력했던 사람으로 느낀 점을 알리고 싶었다. 필름이 대세가 됐으면 좋겠다. 모두가 전문가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이 아니라, 배우고자 하는 사람이 더 쉽게 배울 수 있는, 모든 필름 사진인들이 어디에 살던 편하게 현상과 스캔을 받을 수 있는, 필름이 대한민국에서 대세가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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