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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꾸었다고 말했다 - 손홍규

2018 제42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 문학사상
꿈을 꾸었다고 말했다 - 손홍규

 

 


마음에 남은 문장들

"그러고 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수치 속에 죽어 갔을까."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던 시절을 지나니 어느 순간 꿈을 포기하기 위해 애쓰게 되어버렸다."
"타인의 눈에 그는 흔들림 없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살아온 것처럼 보이겠지만 그는 끊임없이 흔들리면서 부동을 고수했을 뿐이다."
"누군가를 상실한 사람은 유예 기간을 겪어야만 진정한 슬픔에 이르게 되지."
"그는 너무 외로웠기 때문에 외롭다는 걸 잊어버렸고 그걸 잊어버렸기에 외롭다는 느낌이 들 때마다 그가 살아오면서 겪은 절망의 감정들이 한꺼번에 되살아났다."
"전혀 다른 두 사람이 부부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감정을 숨겼다고 해서 감정이 없는 건 아니기 때문이었고 아무리 꽁꽁 감춘다 해도 그곳으로 부드럽게 손을 가져가 어루만져줄 수 있어서였다."
"나는 새롭게 태어났는데 세상은 이미 늙어버렸어."

 


 

좌절, 상실, 죽음에 대한 이야기

 


 

불행의 의미

 

우주 같은 중고서점에서 한참을 방황하다 고른 문학상 작품집.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뒷좌석에 앉아 멀미를 이겨내며 읽었다. 어지러워 중간중간 책을 덮고, 눈을 감고, 다시 책을 펴고, 다시 책을 덮고. 멀미는 버스가 흔들렸기 때문일까, 아니면 글에서 느껴지는 지독한 염세주의가 머리를 흔들었기 때문일까. 지저분한 일상. 가족의 붕괴. 살아 숨 쉬는 폭력. 여느 잔인한 영화 한 편보다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메스껍다. 집에 도착해 방 책걸상에 앉아도 여전히 흔들리는 버스 한 구석에 앉아 있는 기분이다. 


표면적인 이야기는 이해하기 어렵지 않지만 낯선 구조가 돋보인다. 세 개로 끊어진 서사 간 공백을 의식으로 잇지 않고 흰 공백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차분히 글을 읽어 내려갔다. 전체적인 분위기를 표현하기 위해 작중 표현을 빌리자면 방금 입에서 뿜어져 나온 입김마냥 습하고 찝찝한 기분이 글을 읽는 내내 온 몸을 휘감는다. 작중 일어나는 불행은 너무나 일상적이고 흔하다. 손에 잡힐 듯 현실적이고, 끔찍하게 평범하다. 가정의 붕괴, 소통의 부재, 어린 어른의 분노, 직장 내 성폭력. 문학평론가 김성곤은 본 작품의 시사점을 이렇게 해석했다. 이 작품은 우리가 과거에만 매달리지 말고, 지난날의 잘못을 극복하고 하루속히 미래의 꿈을 되찾아야 한다고 시사한다. 


미래의 꿈을 되찾아야 한다고 시사하기에는 너무 비참하고, 일말의 작은 희망도 보이지 않는 이 작품에서 이분은 어떻게 이런 시사점을 찾아냈을까. 전혀 공감 못하는 모습을 보니 아직 어두운 리얼리티의 문제를 소화하기에 비위가 충분히 어른스럽지 못한가 보다.


전혀 반기지 않고 너무 기피하고 싶지만,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는, 미래에 있을지도 모르는 불행들. 또 주변에서 목격했던 불행들이 이렇게 깔끔한 문체로 눈에 들어오는 기분은, 끔찍한 참사를 겪어 맨 정신으로 보기 힘든—그것도 내가 아는 사람과 정말 닮은, 혹은 나와 닮은—시신을 부검대 위에 올려놓고 맨손으로 차가운 피가 고인 상처를 어루만지는 듯했다. 중간중간 책을 덮고 싶었지만 절망적 서사 끝에 어둡게 가라앉아 터질 것만 같은 마음을 해소시켜줄 장치가 있다는 기대 하나로 소설을 끝까지 읽었다. 그리고 해당 장치의 부재는 심각한 멀미를 남겼다. 멀미를 해소시켜 줄 의미를 찾기 위해 평론가들의 해설을 굶주린 사람처럼 수차례 긁어 읽었다. 껍질까지 박박 읽어도 도저히 이 이야기가 미래의 꿈을 되찾아야 한다라는 시사점을 가졌다고 이해할 수도, 스스로 설득시킬 수 없었다. 


소설에 꼭 긍정적인 영향이 있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글보다 더한 불행은 소설책 따위가 아닌 바로 등만 돌리면 손이 닿을 옷장 속 셔츠처럼 현실에 가깝게 존재하니까. 상상 속 이야기쯤 어두워도 상관없다. 하지만 방 책상 위 손만 뻗으면 당장 느낄 수 있는 필기구의 촉감 같은 개인적인 경험과 목격에 기반한 듯한 현실이 정갈히 인쇄된 글자들을 보니 마음 한 구석이 불쾌했다. 이 불쾌함의 원천을 규명할 수도 없다. 원인을 추적하며 생각을 점화하면 우울의 나선에 깊이 빠질까 덜컥 겁이 든다. 모든 불행한 이야기의 끝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비에 젖은 축 처진 마음뿐만 아니라 잠재적 불행을 예방할 반면교사 교훈과, 현실의 공포 감각이라 생각한다. 현실의 공포 감각이라 함은 평범한 일상의 상처를 넘어, 테러와 같은 사건이 현실에 존재한다는, 무의식에 거대한 사건의 공포를 주사해 매 순간 발을 디딜 때 불행을 비껴지나 칠 약간의 직감과 감각을 키워주는 게 이런 류의 소설이 하는 기능 중 하나라 생각한다. 


폭탄 테러와 같은 사건은 드물다. 하지만 날카롭고 서슬 퍼런 칼날에 베인듯한 고통을 주는 불행은 종종 일상의 문을 두드린다. 가끔 나를 포함한 누군가가 아물지도 않은 상처 위에 또 상처를 남겨 몸서리치는 고통에 잠 못 들며 악몽을 겪는 시간을 보내기도, 상처 따위 없었다는 듯 돋아난 새살의 부드러움을 감탄하며 주변에 으스대는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늘어나는 나이는 흉터 수를 가늠하는 지표처럼. 늘어난 흉터 수와 상처로 덮인 피부의 찢어진 틈은 아직 뜨거운 피를 뿜어내지만 감각적 충격은 희미해져만 간다. 점점 치료에도 무심해진다. 관심을 끄게 된다. 감정적인 고통 앞에 초연한 게 어른스러운 것이니까. 가끔 눈물 찔끔 흐를 정도로 아파도 이 악물고 안색을 유지해야 하는 게 나잇값 하는 거니까. 그렇게 마음의 병은 심각해진다. 언젠가 신문에서 "현대인이 정신병 하나 달고 사는 것은 요즘 흔한 일"이라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말을 읽었다. 정신병이 흔한 사회가 병든 것일까. 병든 사회가 정상인의 조건을 멋대로 바꾼 것일까. 남 앞에서 아픔을 숨기는 게 어른이고 나잇값 하는 것이라면 차라리 혼자 있고 싶다. 아프다고 털어놔서 비웃음밖에 사지 못한다면 과묵한 종이 위에 눈물을 쏟겠다. 아프게 한 사람의 저주는 물론이고 지저분한 욕지거리도 적어 내릴 것이다. 겉으로 보일 표정과 몸짓이 항상 어른스럽기를 바란다면.


폭력과 고통의 신음으로 지독한 멀미를 선사해준 이 작품을 잡힐 듯 잠재하는 불행을 비껴 나게 해 줄 백신이라 생각한다. 일상의 비극과 인생의 비극을 매번 기적적으로 피할 수 없지만 의식적으로 불행의 발인 요소를 규명하려 주변 사람과 사건에 신경 쓰면 행복과 조금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행복도 불행만큼 가깝다고 믿는다. 

 


행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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