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는 좋게 평가하고, 현재는 찾지 못하고 미래는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요즘.
좋고 평범하고 나쁜 순간의 비율은 비슷하다. 하지만 과거를 뒤돌아보면 좋은 순간들 위주로 남아있는 듯하고, 현재는 무료하기 짝이 없이 평범하고, 엿보는 미래는 나쁜 일들만 가득할 것 같다. 그렇게 우리는 좋은, 평범한, 나쁜 순간들이 각각 과거 현재 미래에 편중되어있다 착각한다. 좋은 기억들로 정제된 과거를 자주 떠올리는 이유는 현재를 바라보는 부정적인 관점 때문일까? 미래를 생각하며 불안함에 빠지는 이유는 순간을 살아가는 스스로의 모습이 불안하리만큼 안정적이라 그런 걸까? 과거나 미래를 생각할 때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편향된 판단에 빠진다.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 척도의 기준점을 현재에 가장 많이 두어야 한다.
물론 쉽지 않다. 현재는 평가를 할 수 없다. 객관적인 결과판정·사후평가가 힘들다. 불완전한 상태. 매듭짓지 못한 상황을 무슨 기준으로 완료형 사고·판단 근거로 삼을 수 있을까? 우리는 평가가 용이한 과거를 주로 활용한다. 과거의 실적은 비교가 용이하고, 과거 근거를 토대로 판단을 내리면 합리적인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을 준다. 하지만 불완전한 현재를 더 중시해야 하는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현재가 완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현재는 최신의 단서와도 같다. 주식거래를 예시로, 어제의 증권 신문 정보와 실시간으로 기자의 손끝에서 입력되는 정보, 둘 중 하나의 정보를 토대로 판단해야 한다면, 어떤 것을 고르겠는가. 물론 작성 중인 기사는 정확도, 신뢰도의 문제로 인쇄되기 전에 삭제되거나 변경될 수도 있다. 그것이 현재의 불완전성이다. 하지만 우리는 누군가가 흘려주는 정보를 그대로 받아먹는 파쇄기가 아니다. 비판적 사고를 이용, 쏟아 넘치는 정보의 물살에서 예리한 눈빛으로 한 번의 작살 투척으로 물고기를 잡아채는 사냥꾼처럼, 돌과 물고기를 구분해낼 수 있는 눈을 길러야 한다.
순간의 판단은 고된 일이다. 그것은 약간의 자신감도 요구한다. 이정표 하나 없는 원시림에서 어스름하게 들어오는 햇빛 하나에 의존해 길을 만들어가는 일이다. 결과가 없기에 자기 부정에 빠지기도 쉽다. 걸어 온 길은 '안전하게' 왔기에 편안하고 포근한 느낌을 주고, 걸어가야 할 길에는 무엇이 있을지 모르기에 불안하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를 안정시킬 오늘의 결과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스스로의 판단력을 믿고 조금은 긍정적인 과거와 조금은 부정적인 미래를 생각하며 묵묵히 눈앞에 보이는 것들에 집중해 빽빽한 수풀을 뚫으며 걷다 보면, 정상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의 우리는 필연적으로 불안할 수 밖에 없는 존재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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